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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를 평정한 신 의손 (선수 생활, 지도자 생활)

by 뮤즈크롬의 티스토리 202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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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LG 시절 신의손 선수

신의손, 본명 발레리 콘스탄티노비치 사리체프. 그는 단순한 외국인 용병이 아니었다. 1990년대 K리그를 평정한 전설적인 골키퍼이자,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귀화 선수로서 한국 축구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실력과 헌신, 그리고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상징하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이 글에서는 신의손의 국내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중심으로, 그의 축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소비에트 톱리그에서 K리그로

신의손은 1960년 1월 12일,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발레리 사리체프. 그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부터 골키퍼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221경기를 뛰며 소비에트컵 우승과 UEFA 유로파리그 8강 진출 등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1991년 소비에트 톱리그가 해체되면서 그는 새로운 무대를 찾아야 했고, 그 선택지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었다.

1992년, 그는 K리그의 일화 천마에 입단하며 한국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한국 축구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던 시기였지만, 신의손은 그 모든 편견을 실력으로 무너뜨렸다. 192cm의 큰 키와 빠른 반사신경, 안정적인 수비 리딩 능력은 곧바로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신의손은 일화 천마에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7시즌 동안 공식전 198경기를 소화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K리그 3연패(1993, 1994, 1995),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1995), 아시안 슈퍼컵 우승(1996)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 연속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며,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았다.

그의 실점률은 0점대에 머물렀고, 8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당시 그의 활약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어서, K리그는 1999년부터 외국인 골키퍼의 출전을 금지하는 규정을 도입하게 된다. 이는 국내 골키퍼 육성을 위한 조치였지만, 그만큼 신의손의 존재감이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99년, 외국인 골키퍼 출전 금지 규정으로 인해 그는 선수로서의 활동이 제한되었지만, 안양 LG 치타스의 조광래 감독은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귀화를 통해 다시 선수로 뛰자는 것이었다. 이에 신의손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팬들이 붙여준 별명 ‘신의손’을 공식 이름으로 개명했다. 그는 구리 신씨의 시조가 되었고,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귀화 선수가 되었다.

2000년, 그는 40세의 나이로 다시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안양 LG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며 2000년 K리그 우승, 2001년 준우승, 슈퍼컵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등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2004년까지 공식전 131경기에 출전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의 K리그 통산 기록은 325경기 출전, 357실점, 클린시트 114회에 달한다.

지도자로서의 제2의 인생

2005년 5월 1일, 울산 현대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진 그는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FC 서울에서 골키퍼 코치로 첫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 그는 이후 경남 FC, 부산 아이파크, FC 안양, 김해시청 등 다양한 팀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약했다. 특히 여자 실업축구팀 이천 대교에서는 수석 코치 겸 골키퍼 코치로 WK리그 우승(2011), 전국체육대회 금메달(2010, 2011, 2016) 등 여성 축구 발전에도 기여했다.

2009년에는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며 FIFA U-20 월드컵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U-23 대표팀에서도 잠시 코치를 맡으며 청소년 축구 육성에도 힘을 보탰다.

그는 지도자로서도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함으로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90세까지 골키퍼 코치로 뛰고 싶다”는 말처럼 지금도 천안공업고등학교에서 유소년 골키퍼들을 지도하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키우고 있다.

신의손은 단순히 귀화한 외국인 선수가 아니다. 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온 그는, 선수 시절에도 지도자 시절에도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의 지도 철학은 “말로만 하지 않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실제로 훈련장에서는 선수들보다 먼저 나와 몸을 풀고, 직접 공을 차며 지도에 임한다. 그는 한국을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 부르며, “한국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한다. 가족은 러시아와 미국, 독일 등지에 흩어져 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에 남아 축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있다.

신의손,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신의손의 축구 인생은 도전과 개척, 그리고 헌신의 연속이었다. 소비에트 톱리그에서 K리그로, 외국인 선수에서 귀화 선수로,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삶까지. 그는 한국 축구의 역사 속에서 단순한 외국인 용병이 아닌, 진정한 한국 축구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이름은 단지 기록에 남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전설이다. 앞으로도 그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그라운드 밖에서 ‘신의 손’으로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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