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한국 축구 팬들에게 씁쓸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대회였습니다. 지금 40대를 맞이한 세대에게는 학창시절 혹은 사회 초년생 시절의 감동과 아쉬움이 담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98 대표팀의 감동적인 순간, 경기 명장면,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의 재조명을 통해 당시의 축구 열기와 교훈을 다시 돌아보려 합니다. 특히 필자는 그때의 멤버들을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거리에서 술집에서 응원하는 분위기이지만 98년도 당시에는 광화문에서 서포팅하고 축구펍이 귀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주 좋은 추억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감동 – 월드컵 무대에 선 한국 축구의 자부심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한국 축구가 네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이었습니다. 본선 진출만으로도 국가적 축제 분위기였고, 대회 시작 전까지 팬들의 기대감은 상당히 컸습니다. 당시 대표팀은 차범근 감독이 이끌고 있었으며, 황선홍, 유상철, 홍명보, 서정원, 김병지 등 스타 선수들이 중심이었습니다. 이들은 아시아 예선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무난히 본선에 진출했고, 국민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겼습니다. 당시의 감동은 단순한 경기 결과를 넘어서 ‘우리가 세계 무대에 나섰다’는 자부심이었습니다. 특히 개막전에서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을 때의 함성은 전국을 울릴 만큼 강렬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거리응원에 나서며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이라는 개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는 이후 2002년 월드컵 대흥행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비록 기대만큼의 성적은 아니었지만, 98 대표팀은 당시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명장면 – 멕시코전 선제골과 네덜란드전 충격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은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와 한 조에 속했습니다. 첫 경기였던 멕시코전은 국내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고, 전반 27분 하석주의 선제골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하석주 선수의 백태클로 인한 퇴장과 후반전 체력 저하와 수비 붕괴로 인해 1:3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팬들은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하석주의 골 장면은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장면입니다. 두 번째 경기였던 네덜란드전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뼈아픈 패배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세계 최강급 팀이었고, 그들의 수장은 우리의 2002년 감독이였던 히딩크 감독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조직력과 속도는 한국을 압도했습니다. 결과는 0:5 대패였고, 이 경기를 끝으로 차범근 감독은 경질되었습니다. 그 충격의 순간은 많은 40대들에게 ‘충격과 현실’을 동시에 일깨워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경기에 이동국이라는 스타가 탄생하였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것입니다. 반면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는 2경기에 기용하지 않았던 이상헌 선수의 출전으로 수비의 견고함을 보였으면 홍명보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재조명 – 2020년대의 시선으로 본 98 대표팀
시간이 지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1998년 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더 객관적이고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당시는 전술, 체력, 기술 면에서 유럽과 큰 차이를 보였지만, 월드컵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운 시기였습니다. 98 대회를 통해 대표팀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를 체험했고, 이 경험은 이후 히딩크 체제에서의 대성공에 초석이 되었습니다. 또한 98 대표팀의 선수들은 이후에도 한국 축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홍명보, 유상철, 김병지, 황선홍 등은 이후 지도자나 해설가로 활약하며 축구계에 공헌했습니다. 특히 유상철 선수는 2019년 안타까운 소식을 남겼지만, 그의 헌신과 투혼은 여전히 많은 팬들에게 영감이 됩니다. 지금 40대에게 98 대표팀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한국 축구 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세대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40대에게 1998년 대표팀은 아픈 기억이자 동시에 성장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감동적인 순간과 아쉬운 명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며, 재조명을 통해 그 가치를 더욱 되새기게 됩니다. 한국 축구가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시기의 경험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며, 축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