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5일,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최종전. 한국과 일본의 맞대결은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선 자존심의 충돌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한국 축구 팬들에게 또 한 번의 실망을 안겼다. 0-1 패배, 그리고 한일전 사상 첫 3연패라는 기록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경기 전 분위기와 기대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은 앞선 중국전(3-0), 홍콩전(2-0)에서 연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탔다. 일본 역시 홍콩(6-1), 중국(2-0)을 제압하며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두 팀 모두 승점 6으로 동률이었지만, 골득실에서 일본이 앞서 있었기에 한국은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홍 감독은 최정예 멤버를 투입하며 필승 의지를 드러냈다. 주민규, 이동경, 나상호가 스리톱을 구성했고, 중원에는 김진규와 서민우가 배치되었다. 수비는 김주성, 박진섭, 박승욱이 맡았으며, 골문은 조현우가 지켰다.
경기 흐름
경기 초반, 한국은 나상호의 날카로운 슈팅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전반 6분, 나상호가 왼쪽 측면을 돌파해 오른발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대를 강타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졌다. 전반 8분, 일본의 소마 유키가 올린 크로스를 저메인 료가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저메인은 이번 대회에서만 5골을 기록하며 일본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한국은 이동경의 프리킥 기회를 얻었지만 수비벽에 막혔고, 전체적으로 일본의 압박에 밀리며 전반을 0-1로 마쳤다. 유효 슈팅은 단 한 개도 없었다는 점에서 공격의 날카로움이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홍 감독은 주민규 대신 이호재를 투입하며 높이를 강화했다. 이어 문선민, 오세훈, 강상윤, 정승원까지 교체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하지만 일본의 수비는 단단했고, 한국은 번번이 마지막 패스에서 실수를 범했다. 후반 40분, 이호재가 문전에서 발리 슈팅을 시도했지만 일본 골키퍼 오사코 게이스케의 슈퍼세이브에 막히며 동점골 기회를 놓쳤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한국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홈에서 열린 경기, 반드시 이겨야 했던 무대에서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패배를 당한 것이다.
한국은 4-3-3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측면 돌파와 크로스를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한 듯, 측면 수비에 강한 압박을 가하며 크로스의 정확도를 떨어뜨렸다. 특히 중원에서의 창의적인 패스가 부족했고, 2선 침투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공격 패턴이 지나치게 단순했다. 반면 일본은 4-2-3-1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저메인 료를 중심으로 한 빠른 역습과 세밀한 패스 플레이로 한국 수비를 흔들었다. 특히 중원에서의 볼 점유율이 높았고, 한국의 압박을 빠르게 풀어내는 기술적 우위가 돋보였다.
홍명보 감독은 후반에 교체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전술적 변화는 제한적이었다. 기본적인 포메이션은 유지한 채 선수만 바꾸는 방식이었고, 일본의 수비를 흔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반면 모리야스 감독은 경기 중 포메이션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며 한국의 압박을 분산시켰다. 특히 중원에서의 숫자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경기 흐름을 주도했다. 감독의 전술적 유연성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역사적 굴욕과 향후 과제 이번 패배로 한국은 한일전에서 사상 첫 3연패를 기록했다. 2021년 요코하마 친선전(0-3), 2022년 나고야 EAFF 챔피언십(0-3)에 이어 이번 0-1 패배까지, 일본을 상대로 연속 무득점 패배를 당한 것이다. 더불어 2019년 이후 6년 만의 동아시안컵 우승 탈환에도 실패하며, 일본에게 대회 2연패를 허용했다. 일본은 통산 3회 우승으로 한국(5회)과의 격차를 좁혔다. 홍명보 감독 체제에서의 첫 패배라는 점도 뼈아프다. 지난해 하반기 출범한 ‘홍명보호 2기’는 공식 13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오다 이번 경기에서 첫 패배를 기록했다.
결론: 단순한 패배가 아닌 구조적 문제 그리고 반응
이번 대회에서 일본은 유럽파를 제외한 J리그 선수들로만 구성된 ‘4군급’ 전력을 내세웠다. 반면 한국은 K리그 주축에 일부 J리거를 포함한 ‘최정예’ 멤버였다. 그럼에도 경기력에서 일본에 밀렸다는 점은 리그의 경쟁력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J리그는 이미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으며, 유소년 시스템과 전술 교육에서도 앞서 있다. 반면 K리그는 여전히 관중 동원력, 투자 규모, 유소년 육성 등에서 과제가 많다. 이번 한일전은 단순한 국가대표팀의 대결이 아닌, 리그 시스템 간의 충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졌잘싸는 없다”, “K리그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특히 일본이 유럽파 없이도 한국을 제압했다는 점에서, 한국 축구의 위기론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는 이번 패배를 단순한 경기 결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유소년 시스템의 개혁, 리그 경쟁력 강화, 감독의 전술 다양성 확보 등 구조적 혁신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