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황새’라는 별명을 가진 황선홍은 단순한 스트라이커를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는 골을 넣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축구의 방향을 제시하며 수많은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선수로서의 화려한 커리어, 국가대표로서의 헌신,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도전까지, 황선홍의 축구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선수생활과 국가대표
1968년 7월 14일,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난 황선홍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용문중학교와 용문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대학 시절부터 이미 국가대표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당시 한국 축구는 기술보다는 체력과 투지에 의존하던 시기였지만, 황선홍은 날카로운 골 감각과 유려한 움직임으로 차별화된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1년, 그는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독일로 건너가 바이어 레버쿠젠 II와 부퍼탈러 SV에서 활동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고, 유럽 무대에서의 경험은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1993년, 그는 포항제철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하며 본격적인 K리그 커리어를 시작했다.
포항에서의 황선홍은 그야말로 ‘황새의 비상’이었다. 1995년에는 8경기 연속골이라는 K리그 신기록을 세우며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1996년에는 K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그의 플레이는 단순한 골잡이를 넘어, 팀의 흐름을 조율하고 동료를 살리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특히 라데 보그다노비치와의 투톱은 K리그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조합으로 평가받는다.
1998년, 그는 일본 J리그의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곳에서도 황선홍은 빛났다. 1999년에는 J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대한민국 선수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해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는 한국 축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그의 이름은 일본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황선홍은 1988년부터 2002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A매치 103경기 50골이라는 기록은 지금도 역대 최다 득점 2위에 해당하며, 그는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몇 안 되는 한국 선수 중 하나다. 그는 1990년, 1994년, 1998년, 2002년 FIFA 월드컵에 모두 참가했으며,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폴란드전 선제골을 기록하며 한국의 4강 신화에 기여했다.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도 투혼을 발휘한 그의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한일전 4경기 5골이라는 기록은 차범근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이며, 출전한 모든 한일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은퇴와 지도자로서의 시작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마지막 선수 생활을 마친 그는 2003년 공식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전남에서 코치로 시작한 그는 2008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데뷔했고, 이후 포항 스틸러스, FC 서울, 옌볜 푸더, 대전 하나 시티즌, 대한민국 U-23 대표팀, 그리고 대한민국 A대표팀 임시 감독까지 다양한 팀을 이끌었다.
포항 감독 시절, 그는 2012년과 2013년 FA컵 우승, 2013년 K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지도자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입증했다. 특히 외국인 선수 없이 FA컵과 리그를 동시에 우승한 ‘더블’은 한국 축구 역사상 유례없는 성과였다. 그의 전술은 ‘스틸타카’라 불릴 정도로 조직적이고 빠른 패스 플레이를 기반으로 했다.
2016년 FC 서울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첫 시즌에 K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지도력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후 성적 부진으로 2018년 사퇴했고, 중국 옌볜 푸더 감독직을 맡았으나 구단 해체로 짧은 기간만 활동했다. 2020년에는 대전 하나 시티즌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과 내부 갈등으로 인해 중도 사임했다.
2021년, 그는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지도자로서 재기에 성공했다. 7경기 27득점 3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은 그의 전술적 능력과 선수단 장악력을 입증하는 결과였다. 이후 2024년에는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대한민국 A대표팀 임시 감독으로 발탁되어 태국과의 월드컵 예선을 지휘했다. 1차전 무승부, 2차전 승리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2024년 6월, 그는 다시 대전 하나 시티즌의 감독으로 복귀하며 K리그 무대에 돌아왔다. “다시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라는 소감은 그가 축구에 대해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재 그는 팀을 재정비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과 유산
황선홍은 위치 선정, 헤딩력, 슈팅력, 순간 스피드, 넓은 시야 등 스트라이커로서 거의 모든 능력을 갖춘 선수였다. 그의 별명 ‘황새’는 긴 다리와 유려한 움직임에서 비롯되었으며, 팬들에게는 늘 든든한 존재였다. 그는 단순한 골잡이가 아닌, 팀을 위한 플레이어였고, 지도자로서는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축구 철학은 ‘조직력과 창의성의 조화’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는 지금도 많은 후배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