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에서 ‘승부사’, ‘호랑이 감독’, ‘붉은 악마의 창시자’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박종환 감독이다. 그는 단순한 축구 지도자가 아니라, 한국 축구의 정신과 투지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된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FIFA 주관 대회 첫 4강 신화를 이끌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이후 프로축구와 국가대표팀, 여자축구, 유소년 축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했다. 그의 축구 인생은 한 편의 서사시처럼 굴곡과 감동으로 가득하다.
어린 시절과 축구와의 첫 인연
박종환은 1936년 2월 9일,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성장한 그는 춘천중학교와 춘천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학창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수원 유신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도 활동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의 지도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박종환은 선수 은퇴 후에도 축구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1971년부터 1979년까지 그는 국제 축구 심판으로 활동하며 정확한 판정과 경기 운영 능력으로 인정받았다. 연·고전 심판진에 단골로 선정될 만큼 그의 심판 능력은 탁월했으며, 김호 감독을 퇴장시킨 일화는 그의 심판 경력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
박종환 감독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사건은 바로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은 북한의 국제 대회 출전 금지로 인해 대체 출전하게 되었고, 박 감독은 이 팀을 이끌어 사상 첫 FIFA 주관 대회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멕시코의 고지대 환경에 대비해 국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시키는 등 철저한 준비를 했고, 태릉선수촌 뒷산을 매일 오르게 하는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렸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스코틀랜드에 패한 후 멕시코와 호주를 꺾고 8강에 진출, 우루과이마저 제압하며 4강에 올랐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1-2로 패하며 결승 진출은 좌절됐지만, 이 성과는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었다. 당시 한국 선수들의 붉은 유니폼과 투혼 넘치는 경기력은 현지 언론으로부터 ‘Red Furies(붉은 악령)’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는 훗날 한국 축구 서포터즈 ‘붉은 악마’의 유래가 되었다.
프로축구에서의 지도자 경력
1989년, 박종환은 K리그 신생팀 일화 천마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최초로 정규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명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스파르타식 훈련 방식과 단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1996년 시즌 도중 사퇴하게 된다. 이후 2003년에는 대구 FC의 창단 감독으로 복귀해 2006년까지 팀을 이끌었고, 2014년에는 성남 FC의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선수 폭행 논란으로 인해 4개월 만에 사퇴했다4. 2018년에는 K3리그 여주 FC의 창단 총감독으로 부임해 2020년까지 활동하며 유소년 축구 발전에도 기여했다.
여자축구와 유소년 축구에 대한 관심 그리고 말년과 별세
박종환은 남자 축구뿐 아니라 여자 축구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2001년에는 한국여자축구연맹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숭민 원더스 여자축구단의 단장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여주 FC의 창단 총감독으로 부임해 2020년까지 활동하며 유소년 축구 발전에도 기여했다.
박종환 감독은 말년에는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며 치매와 싸웠다. 2023년 10월 7일, 코로나19 감염 후 패혈증 증세로 인해 경기도 남양주의 병원에서 향년 87세로 별세했다4. 대한축구협회는 그의 공로를 기리며 축구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렀고, FIFA 회장 잔니 인판티노 역시 애도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의 마지막은 다소 쓸쓸했다. TV조선의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근황을 밝히며, 지인들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박종환 감독의 축구 철학과 유산
박종환 감독은 ‘고독한 승부사’, ‘호랑이 감독’,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강한 리더십과 승부욕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축구 철학은 철저한 준비, 강한 정신력, 그리고 팀워크에 기반했다. 때로는 논란도 있었지만, 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유산은 단지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멕시코 4강 신화는 한국 축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고, ‘붉은 악마’라는 상징은 지금도 대표팀을 응원하는 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 또한 그의 지도 방식은 후배 지도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유소년 축구와 여자 축구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박종환 감독의 축구 인생은 단순한 스포츠 경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선수, 심판, 지도자, 행정가로서 한국 축구의 모든 영역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도전과 성취를 이뤄냈다.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그는 항상 축구를 향한 진심을 잃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한국 축구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서사이며, 앞으로도 박종환이라는 이름은 한국 축구의 투혼과 헌신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