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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이 이영표 선수(축구의 시작,해외진출,행정가)

by 뮤즈크롬의 티스토리 2025.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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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선수

 

유년기와 K리그의 시작 국가대표

1977년 4월 23일, 강원도 홍천군 내면 창촌리에서 태어난 이영표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창촌초등학교에서 시작된 그의 축구 인생은 안양초등학교, 안양중학교, 안양공업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학창 시절부터 그는 빠른 스피드와 성실한 태도로 주목받았으며, 좌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풀백 자원으로서 성장 가능성이 높았다. 그의 별명 ‘초롱이’는 반짝이는 눈빛에서 유래되었으며, ‘바람’이라는 별명은 그의 폭발적인 스피드를 상징한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프로 무대와 국가대표팀에서 큰 자산이 되었다.

2000년, 이영표는 K리그 드래프트 1순위로 안양 LG 치타스(현 FC 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첫 해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K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2001년에는 준우승, 2002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좌측 풀백으로서 빠른 오버래핑과 정확한 크로스로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수비에서도 안정적인 위치 선정과 태클로 팀의 후방을 책임졌다.특히 2000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는 자책골을 기록했지만, 그 이후 더욱 성숙한 플레이로 팬들의 신뢰를 얻었다.

이영표는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 127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했다. 그는 2002년, 2006년, 2010년 FIFA 월드컵에 모두 출전했으며, 특히 2002년 월드컵에서는 박지성의 포르투갈전 골과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을 어시스트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센추리 클럽의 일원이기도 하며, 2011년 AFC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유럽 무대의 시작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이영표는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의 부름을 받아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 처음에는 6개월 임대였지만, 곧 완전 이적이 이루어졌다. PSV에서 그는 박지성과 함께 활약하며 2004-0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한국 선수로서는 최초의 기록이었으며, 유럽에서도 그의 성실함과 기술이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 이영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의 리그로 평가받았으며, 아시아 선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적응하며 팀의 주전 풀백으로 자리 잡았다. 토트넘에서 그는 70경기에 출전하며 안정적인 수비와 빠른 오버래핑으로 팀에 기여했다. 특히 2007-08 시즌에는 EFL컵 우승을 경험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2008년,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도르트문트에서는 18경기에 출전했으며, 부상과 경쟁 속에서도 성실한 태도로 팀에 기여했다. 2009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힐랄로 이적해 중동 무대에 도전했다. 알힐랄에서는 46경기에 출전해 사우디 프로리그 우승 2회, 크라운 프린스컵 우승 2회를 경험하며 중동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갔다.

2011년, 이영표는 캐나다 메이저리그 사커(MLS)의 밴쿠버 화이트캡스로 이적했다. 그는 65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고, 2012년에는 팀 MVP로 선정되었다. 2013년 10월 28일, 그는 공식적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대한민국과 스위스의 친선 경기에서 은퇴 행사를 가졌으며, 마지막으로 친정팀 FC 서울에서 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은퇴 이후의 삶과 활동

은퇴 후, 이영표는 KBS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놀라운 경기 예측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해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축구 철학과 전략을 담아내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는 강원 FC의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행정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했다. 그는 구단 운영의 투명성과 유소년 육성에 집중하며 새로운 축구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풋웨어 스타트업 ‘삭스업’의 대표이사로서 스포츠 비즈니스에도 도전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송 활동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도 이어가고 있다.

이영표의 축구 철학과 유산

이영표는 단순한 축구 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통해 삶의 철학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항상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로 경기에 임했으며, 팀을 위한 헌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의 플레이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안정적이고 믿음직스러웠다. 좌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유연성, 빠른 스피드, 정확한 태클,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의 어시스트 능력은 그를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풀백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의 축구 인생은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며, 지금도 해설과 방송을 통해 축구 팬들과 소통하며 그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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