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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록, 기적을 걷는 남자

by 뮤즈크롬1 2025.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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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시절 신영록 선수

축구 천재의 탄생과 세계 무대의 도전

신영록은 1987년 3월 27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남다른 운동 신경과 집중력을 보였고, 특히 축구공을 다루는 감각은 또래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이미 지역 내에서 ‘축구 천재’로 불릴 만큼 주목받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세일중학교를 중퇴하고, 2003년 만 16세의 나이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고, K리그 역사상 최연소 출장 3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2005년에는 부천 SK를 상대로 K리그 데뷔골을 기록하며 최연소 득점 9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시기 신영록은 단순한 유망주가 아닌,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불릴 만큼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의 재능은 국내를 넘어 국제무대에서도 빛났습니다. FIFA U-17, U-20 월드컵, 그리고 2008 베이징 올림픽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월반하며 출전했고, 대한민국 최초로 두 번의 FIFA U-20 월드컵에서 모두 골을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한국 선수의 경쟁력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2006년 카타르 국제청소년대회에서는 5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그는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 골 결정력, 그리고 팀을 이끄는 리더십까지 보여주며 단순한 스트라이커 이상의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그를 “한국의 드로그바”라 부르며, 유럽 진출 가능성까지 언급했습니다.

2009년, 그는 터키 쉬페르리그의 부르사스포르로 이적하며 해외 무대에 도전했습니다. 낯선 환경과 언어, 문화 속에서도 그는 빠르게 적응했고, 24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지 팬들은 그를 ‘영록바’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강한 몸싸움과 저돌적인 돌파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축구 인생은 늘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계약금 지급 문제로 인해 부르사스포르를 떠나야 했고,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톰 톰스크와 계약했으나 이적 동의서 문제로 입단이 무산되며 다시 수원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이 시기 그는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다시 국내 무대에서 재기를 꿈꾸며 묵묵히 훈련에 임했습니다.

심장마비와 생존, 그리고 기적의 회복

2011년 5월 8일,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대구FC와의 경기 도중, 경기 종료 직전 슈팅을 날린 후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당시 상황은 매우 긴박했습니다.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고, 몇 초의 지체가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상대팀 수비수 안재훈이 신속히 기도를 확보했고,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경기가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것도 천운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심장 전문 병원이 3km 거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면 44km 거리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된 신영록은 무려 50일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의료진은 생존 확률을 단 2%로 판단했고, 가족과 팬들은 매일 기적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눈을 떴습니다. 그 순간은 단순한 회복이 아닌, 생명을 향한 기적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회복 이후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뇌병변 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걷기와 말하기에 큰 불편함을 겪게 되었습니다. 축구선수로서의 커리어는 사실상 끝났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매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과 솔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집에서도 러닝머신을 이용해 하루 40분씩 걷는 훈련을 병행했습니다.

“힘들지 않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긍정이 아니라, 삶을 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는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고, 그라운드를 걷는 꿈을 꿉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찬란했던 순간들이 남아 있습니다. 2004년 말레이시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8강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터뜨린 오버헤드킥 결승골, 2008년 FC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 중거리 슛으로 두 골을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끈 장면은 그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다시 걷는 길, 지도자의 꿈과 삶의 메시지

신영록은 현재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재활 중이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축구를 통해 삶의 희망을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내가 다시 뛸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나를 통해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삶의 철학입니다.

‘영록바’라는 별명은 디디에 드로그바와 닮은 체격과 플레이 스타일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강한 몸싸움과 탁월한 위치선정, 골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았습니다. 스스로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다소 부족했지만, 문전에서의 적극성과 기술은 누구보다 돋보였습니다. 그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투지와 집중력은 지금도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의 인사는 천천히, 그러나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신영록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는 여전히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재활에 매진하며, 축구와 삶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신영록의 이야기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일어선 한 인간의 이야기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의 서사입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그는 여전히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은 느리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또 다른 기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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