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윙어 중 한 명으로,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모두 강한 존재감을 남기고 있는 인물입니다.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그를 전 국민의 기억에 각인시켰고, 유럽 무대에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는 이후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축구팬이라면 그의 빠른 발, 날카로운 크로스, 헌신적인 플레이를 떠올릴 것이며, 2002세대라면 그의 어시스트 하나로 인생의 한 페이지가 바뀌었던 그 순간을 떠올릴 것입니다. 본 글에서는 설기현의 축구 인생을 커리어 중심으로 살펴보고, 감동의 명장면과 전술적 가치를 함께 조명해 보며, 왜 지금도 그가 한국 축구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커리어: 유럽 무대와 국가대표 여정
설기현의 커리어는 한국 축구 역사에서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는 국내에서 평범하게 대학축구를 거친 후 곧바로 해외에 진출한 케이스로, 당시로서는 드문 루트였습니다. 경북대학교 재학 중 그는 대학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1998년 벨기에 1부 리그 로열 앤트워프와 계약하며 유럽 무대를 밟았습니다. 이후 2000년 벨기에 명문 안더레흐트로 이적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까지 경험하게 됩니다.
그의 진정한 유럽 무대 성공은 잉글랜드 무대에서 이뤄졌습니다. 2001년에는 잉글랜드 2부리그 소속 울버햄튼 원더러스(Wolverhampton Wanderers)에 입단했고, 이후 2005년 레딩(Reading FC)으로 이적해 팀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이끌며 본격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특히 레딩 시절, 그는 리그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팀 내 MVP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한국 축구팬뿐 아니라 현지 팬들에게도 인상 깊게 각인되었으며, ‘킹기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풀럼 FC로의 이적은 또 다른 도전이었지만, 여러 부상과 감독 교체 등으로 인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언제나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로 기억되었고, 교체 투입 시에도 늘 전환점이 되는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알힐랄을 거쳐 국내 무대인 포항 스틸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합니다.
국가대표팀 경력도 화려합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A매치 데뷔는 같은 해 이뤄졌으며 총 82경기에 출전해 14골을 기록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히딩크 감독의 핵심 전술 자원으로 활약했으며, 이탈리아전 어시스트를 포함해 팀의 4강 진출에 기여했습니다. 이후 2006 독일 월드컵, 2007 아시안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꾸준히 대표팀에 선발되며 긴 시간 동안 중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했습니다. 경희대학교 축구부에서 감독으로 시작하여, 성남FC에서 지도자 수업을 쌓았고, 현재는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으로 K리그에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거두며 지도자로서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유럽에서 체득한 전술 이해와 팀 운영 방식은 감독 설기현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국내 젊은 감독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명장면: 2002년 이탈리아전의 전설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2002년 6월 18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시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연장 후반, 1-2로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 설기현의 한방이 경기를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왼쪽 측면에서 빠르게 치고 들어가 수비수를 따돌린 뒤, 정확한 크로스를 안정환에게 연결했고, 안정환은 기적의 헤더골로 연장 역전승을 완성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어시스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 축구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으며, 국민의 열정과 희망이 하나가 된 기적의 서사였습니다. 당시 관중석은 물론 전국의 거리응원 현장에서는 함성과 눈물이 뒤섞였고, 설기현은 그 중심에서 역사적 장면을 연출한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명장면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2002년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에서도 그는 결승골을 기록하며 승리에 직접적으로 기여했고, 포르투갈전에서는 폭넓은 활동량과 수비 가담으로 전술적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그는 속도와 기술 모두를 겸비한 윙어로, 당시 수준 높은 유럽 수비수들과의 대결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세계 축구계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2년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설기현은 단순한 선수 그 이상입니다. 그는 당대의 에너지, 꿈, 열정을 대표하는 얼굴이었으며, 월드컵이라는 대형 무대에서 평범한 일상을 잠시 잊고 모든 국민이 하나로 뭉쳤던 시절의 ‘기억’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축구팬들이 그의 어시스트 장면을 회상하며, 당시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전술적 가치: 빠른 전환과 공간 활용의 대가
설기현이 단순히 ‘잘 달리는 윙어’로 기억되는 것은 매우 축소된 평가입니다. 그는 전술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선수였으며, 감독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술적 멀티툴’이었습니다. 우선 설기현은 공을 받는 위치 선정이 탁월했습니다. 항상 상대 수비의 사각지대를 찾아 움직였고, 패스를 받은 후에도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전환 플레이’입니다. 수비 상황에서 공격으로 빠르게 넘어갈 때 설기현의 속도와 드리블, 판단력은 공격을 예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특히 4-3-3 전형의 좌측 윙포워드로 배치될 경우, 중앙과 측면 모두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상대 수비 라인을 흔들었습니다. 또, 4-2-3-1 전형에서는 2선 침투와 크로스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양쪽 풀백과도 높은 연계성을 보였습니다.
설기현은 동료를 살리는 유형의 선수였습니다. 크로스를 넣는 위치와 타이밍이 정교했으며, 자신이 직접 슈팅보다는 동료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데 집중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전술적 균형감이 탁월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개인 플레이에 의존하지 않고 팀 전술 속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였으며, 특히 수비 시에는 미드필더 라인까지 내려와 커버링하는 희생적인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전술 이해도는 지도자 설기현에게도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서 그는 ‘조직력’과 ‘전환 속도’를 강조하는 전술을 기반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젊은 선수들과의 소통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유럽 무대에서 겪은 다양한 감독 스타일, 포지션별 역할 이해는 그가 전술을 세밀하게 구성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고, 한국 축구가 ‘감독 설기현’에게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설기현은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낸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유럽에서의 도전과 성공,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그리고 2002년 이탈리아전 어시스트라는 결정적인 장면까지. 그의 커리어는 단지 화려한 이력의 나열이 아니라, 한 세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기억’과 ‘영감’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는 지도자로서 또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며, 그의 철학과 경험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팬이라면, 그리고 2002년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설기현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