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일, 한국 프로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벌어졌다. 수도권을 연고로 활동하던 부천 SK가 제주도로 연고지를 이전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결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 팬들의 정체성과 지역의 자존심, 축구 문화의 뿌리를 흔드는 사건이었다. 이 글에서는 당시의 상황과 그에 따른 팬들의 반응, 축구계 인사들의 입장, 사회적 여파를 풀어본다.
분노, 상실, 그리고 저항
부천 SK의 연고 이전은 팬들에게 배신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서포터즈 ‘헤르메스’는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고 창의적인 응원 문화를 만들어낸 집단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화형식이라도 하겠다”는 글이 서포터즈 게시판에 올라왔고, SK 관련 용품을 불태우자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축구 커뮤니티 ‘사커월드’에서는 연고 이전 반대 서명 운동이 벌어졌고, 프로축구연맹과 SK를 규탄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붉은악마를 비롯한 전국의 서포터즈들이 연대하여 ‘연고지 이전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팬들은 단순히 팀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축구 인생과 지역 정체성을 잃었다고 느꼈다. 이와 같이 팬들의 반응이 심각하게 받아 들인것은 안양 LG의 서울 연고 이전이 한번 있었기에 더 분노하게 된 이유로 한가지 요인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2007년 시민의 힘으로 부천FC1995가 창단되었고, 이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팬 주도 구단의 탄생이었다.
엇갈린 시선과 침묵
축구계 내부에서도 부천 SK의 연고 이전은 논란이 많았다. 일부는 기업의 선택을 이해했지만, 다수는 팬과 지역을 외면한 결정이라며 비판했다. 이영민 감독 (부천FC)은 2020년 제주와 경기에서 승리하고 나서 “팬들이 간절히 기다린 경기다. 부천FC가 존재하는 한 이날의 경기 결과는 팬들에게 영원히 남을 것이다”라며 연고 이전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김학범 감독 (제주 SK)은 경기에서 지고나서 “많은 경기 중 하나일 뿐”이라며 연고 이전에 대한 감정적 접근을 피하고 경기 자체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남기일 감독 (전 제주)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천 SK 시절 선수였던 남기일 감독이 제주 유나이티드를 이끌며 부천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는 팬들에게 또 다른 감정의 충돌을 불러왔다. 축구인들은 대체로 공식적인 입장을 피하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팬들의 감정은 그 이상으로 깊었다.
지역 정체성과 스포츠 문화의 충돌
부천 SK의 연고 이전은 단순한 스포츠 이슈를 넘어 지역 정체성과 문화적 충돌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부천시의 반발은 SK가 사전 고지 없이 연고지를 이전한 것에 대해 “야반도주”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와 다르게 제주도에서는 프로축구단이 없던 상황에서 SK의 이전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의 활용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학계의 분석은 경제 원리와 정치적 이유를 내세우며 2024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부천 SK의 연고 이전은 수도권 밀집보다 제주도의 금전적·행정적 지원이 핵심 요인이었다”고 분석하며, 팬의 동의 없는 연고 이전은 축구 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이 사건은 기업 중심의 스포츠 운영 방식과 지역 기반 팬 문화 사이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연고 이전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부천 SK의 연고 이전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건 중 하나다. 이 사건은 팬의 존재, 지역의 정체성, 스포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20년이 지난 지금, 부천FC는 시민의 힘으로 성장하고 있고, 제주 SK는 새로운 팬층을 형성하며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었던 감정의 골은 여전히 깊고, ‘연고 이전 더비’는 그 상징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그 이상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과 기억, 그리고 공동체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