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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최용수의 축구 인생(선수,국가대표,감독외)

by 뮤즈크롬의 티스토리 2025. 7. 19.

안양 LG 시절 최용수 선수

한국 축구 역사에서 ‘독수리’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이 있다. 바로 최용수다. 그는 단순한 스트라이커를 넘어, 선수, 국가대표, 감독, 해설가로서 한국 축구의 여러 장면을 장식한 인물이다. 이 글에서는 그의 축구 인생을 선수 시절, 국가대표 활동, 감독 경력으로 나누어 조명해본다.

선수 시절: 파괴력과 투지의 상징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난 최용수는 금정초등학교와 동래중학교, 동래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진학했다. 유소년 시절부터 남다른 피지컬과 골 결정력을 갖춘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며, 대학 시절에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94년 프로팀 LG 치타스에 입단하면서 최용수의 프로 커리어가 시작됐다. 데뷔 첫 해부터 뛰어난 활약을 펼쳐 K리그 신인상을 수상했고, 이후 안양 LG 치타스로 팀명이 변경된 이후에도 팀의 주축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K리그에서 148경기 출전 54골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1998년 FA컵 우승과 2000년 K리그 우승 등 굵직한 성과를 팀과 함께 이뤄냈다. 특히 2000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하면서 국내 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로 인정받았다. 강력한 슈팅력과 공중전 능력, 문전 집중력은 그를 '독수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했다.

2001년에는 일본 J리그로 진출하게 되는데,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로 이적하면서 한국 선수 중 최고 이적료인 3억 엔을 기록했다. J리그에서도 그는 큰 활약을 펼쳤다. 통산 121경기에서 75골을 넣으며 뛰어난 골 결정력을 유지했으며, 2002년에는 J리그의 8000번째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AFC로부터 2003년 4월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이후 교토 퍼플 상가로 임대되었다가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해 일본 무대를 마무리했다. 2006년 FC 서울로 복귀하며 플레잉 코치 역할을 수행했고, 이후 은퇴식을 가지며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끝마쳤다.

국가대표 시절: 간판 스트라이커의 책임과 아쉬움

국가대표 선수로서도 최용수는 한국 축구의 간판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1992년 U-20 대표팀을 시작으로 1994년 아시안게임과 애틀랜타 올림픽을 거쳐 성인 대표팀에 합류했다. A매치 첫 골은 1995년 콜롬비아전에서 기록되었으며,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참가했다. 1998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카자흐스탄전에서 해트트릭을 포함하여 7골을 기록하며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특히 2002년 미국전에서는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며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A매치 통산 69경기에서 27골을 기록한 그는 오랫동안 한국 대표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다.

감독 경력: 서울의 상징에서 강원의 리더까지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FC 서울 코치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은퇴 직후 이장수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활동하면서 지도자 경험을 쌓았고, 이후 귀네슈, 빙가다 감독의 코치진에도 참여했다. 2010년에는 코치로서 FC 서울의 K리그 우승과 리그컵 우승에 기여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1년 황보관 감독의 사임 이후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12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감독 부임 후 그는 FC 서울을 이끌고 2012년 K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2013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며 아시아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또한 2015년에는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선수 시절, 코치 시절, 감독 시절 모두에서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인물로 기록되었다. FC 서울 팬들에게 그는 ‘서울 그 자체’라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2016년에는 중국 슈퍼리그 장쑤 쑤닝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해외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장쑤에서는 슈퍼리그, FA컵, 슈퍼컵에서 모두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2017년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2018년, 강등 위기에 몰린 FC 서울에 복귀하여 팀을 성공적으로 잔류시켰고, 2019년에는 리그 3위를 기록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2020년 시즌 중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게 되었다.

2021년에는 강원 FC의 감독으로 부임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팀을 잔류시켰으며, 강원만의 역동적인 전술을 통해 다시 한번 지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2023년에는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감독직 외에도 그는 축구 해설가와 방송인으로도 활동했다. SBS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면서 재치 있는 입담과 전문적인 분석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욘스’라는 별명으로 예능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SBS의 '골 때리는 그녀들'에 감독으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쿠팡플레이 '슈팅스타' 프로그램에서도 진행을 맡아 축구 팬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결론: 독수리의 흔적은 여전히 그라운드에 남아 있다

최용수는 단순한 축구인이 아니다. 그는 선수로서의 파괴력,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 감독으로서의 리더십, 해설가로서의 유쾌함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그의 축구 인생은 승부욕과 인간미, 그리고 팬과의 의리로 가득 차 있다. FC 서울 팬들에게 그는 서울의 아이콘이었으며, 한국 축구 팬들에게는 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 지금은 감독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한국 축구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