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의 테크니션, 최문식의 모든 것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테크니션’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최문식이다. 1990년대를 수놓은 그의 화려한 개인기와 창의적인 플레이는 많은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은퇴 이후에도 지도자로서 다양한 팀을 이끌며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이 글에서는 최문식의 클럽 경력, 지도자 경력, 그리고 플레이스타일을 중심으로 그의 축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고졸 신화의 시작과 K리그의 중심
최문식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기술적인 플레이로 주목받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1989년 동대부고를 졸업한 그는 대학 진학 대신 바로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하며 고등학교 졸업생으로서는 이례적인 프로 진출을 감행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으며, 한국 축구 최초의 고졸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프로 데뷔 시즌부터 최문식은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포항 스틸야드 개장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고,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는 종료 직전 오버헤드킥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포항 스틸러스에서 총 127경기에 출전하여 26골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92년 K리그 우승과 1993년 아디다스컵 우승 당시 중원에서의 활약은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그는 상무 축구단에서 활동하며 경기 감각을 유지했고, 제대 후 1999년에는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전남에서는 광양 축구 전용구장 개장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해 '개장 경기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65경기에서 11골과 8도움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기량을 과시했다. 이후 일본의 오이타 트리니타로 진출하며 J리그를 경험했지만, 그를 영입했던 감독의 사임으로 인해 입지가 좁아졌고 시즌 중반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했지만, 기대만큼의 활약은 이어지지 않았다. 2002년 부천 SK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며 28경기에 출전한 뒤,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유소년부터 국가대표까지
은퇴 이후 최문식은 축구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포항제철중학교 감독을 시작으로 포항 스틸러스 2군 감독직을 맡으며 유소년 육성에 힘을 쏟았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 수석 코치로 승격되어 프로팀에서의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며, 2012년에는 대한민국 U-17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AFC U-16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비록 8강에서 우즈베키스탄에 패하며 아쉬운 결과를 남겼지만, 그의 지도력은 점차 입증되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 U-20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활약하며 AFC U-19 챔피언십 우승 및 FIFA U-20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2013년부터는 U-23 대표팀의 수석 코치 및 감독 대행을 맡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2015년에는 킹스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기 그는 대표팀에서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차세대 지도자로 평가받았다.
2015년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본격적인 K리그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팀은 성적 부진과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었고, 이후 K리그 챌린지에서도 승격에는 실패하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지도자로서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2017년에는 중국 슈퍼리그 옌볜 푸더에서 박태하 감독의 코치진으로 합류하며 해외 지도 경험을 쌓았고, 2023년에는 말레이시아 클란탄 FA 감독직을 맡아 국제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최근인 2025년에는 안산 그리너스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선임되어 팀의 철학과 비전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한국 축구의 ‘테크니션’
최문식의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은 지금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회자된다. 그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테크니션'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화려한 드리블과 예측 불가능한 개인기로 유명했으며, ‘효창의 마라도나’라는 별명도 이러한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전에서 사포와 같은 고난도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고, 패스 능력도 매우 뛰어났다. 특히 포항 시절 라데와 황선홍 등과의 호흡을 통해 찔러주는 스루패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는 단순한 미드필더가 아닌,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포항과 전남의 홈 구장 개장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한 것은 그의 결정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물론 체력과 수비 가담 능력 측면에서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았고, 이로 인해 대표팀에서는 중요한 순간 엔트리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기술력은 시대를 앞서갔으며, 고종수, 이관우와 같은 후대의 테크니션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거둔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1992년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우승, 1993년 아디다스컵 우승, 2000년 대한화재컵 준우승 등이 있으며, 지도자 시절에는 AFC U-19 챔피언십 우승, 2014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 킹스컵 우승 등 다수의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마무리하며
최문식은 축구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한국 축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축구 인생은 단순한 경기 참여를 넘어, 한국 축구의 흐름을 바꾸는 데 기여한 예술적인 여정이었다. 이제는 안산 그리너스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로서 새로운 축구 철학을 구축해나가며, 다시 한 번 한국 축구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이다. 그의 이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축구계에서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