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역사 속에서 ‘황금 왼발’, ‘날쌘돌이’, ‘그라운드의 테크니션’이라는 수식어로 불리며 팬들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서정원이다. 그는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K리그와 국가대표팀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1992년 프로 데뷔 이후 2007년 은퇴까지, 서정원은 수많은 기록과 이야기를 남겼고, 그의 축구 인생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서정원의 선수 시절 활약, 해외 진출의 도전과 성취,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새로운 행보까지 그의 축구 인생을 깊이 있게 되짚어본다.
선수 시절 빠른 발과 정교한 기술의 상징
서정원은 1969년 경기도 광주시에서 태어났다. 거제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거쳐 1992년 LG 치타스(현 FC 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초부터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드리블, 날카로운 슈팅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날쌘돌이’라는 별명도 이 시기에 붙었다.
그는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특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에는 ‘고종수-데니스-샤샤’로 이어지는 막강한 공격 라인과 함께 수원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K리그 우승 2회(1999, 2004), FA컵 우승(2002),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2회 우승(2001, 2002), 아시아 슈퍼컵 2회 우승(2001, 2002)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그는 K리그 통산 200경기 이상 출전하며 40골 이상을 기록했고, 도움왕(1999), FA컵 MVP(2002), 아시아 챔피언십 MVP(2001) 등 개인 수상도 화려했다.
해외진출 연대기
서정원의 첫 해외 진출은 1998년 프랑스 리그앙의 RC 스트라스부르였다. 당시 이적료 110만 달러로 한국 선수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이었고, 데뷔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강등권 팀을 구해내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다음 시즌 감독 교체와 인종차별적 기용 문제로 벤치에 머물게 되었고, 결국 프랑스를 떠나게 된다.
이후 2005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SV 잘츠부르크로 이적하며 다시 유럽 무대에 도전했고, SV 리트로 옮겨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며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UEFA 인터토토컵 우승에도 기여하며 팀의 UEFA컵 진출을 이끌었다.
그의 해외 진출은 화려함과 동시에 갈등과 아쉬움이 공존했던 여정이었다. 특히 벤피카,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명문 구단들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병역 문제와 협회, 구단 간의 갈등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국가대표로서의 영광
서정원은 1990년 성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이후 2001년까지 A매치 88경기에서 16골을 기록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필자도 골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골 중 하나로 기억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안컵, 동아시안컵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서 활약했다. 특히 도쿄대첩에서 일본을 상대로 헤딩 동점골을 넣으며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감독으로서의 새로운 도전
2007년 은퇴 이후 서정원은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시작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FA컵 우승(2016), K리그 클래식 준우승(2014, 2015) 등 성과를 남겼으며, 팬들과의 소통과 팀 운영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1년에는 중국 슈퍼리그 청두 룽청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해외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 2부리그였던 청두를 1년 만에 슈퍼리그로 승격시켰고, 이후 5위, 4위, 3위로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2025년에는 청두를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키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쾌거를 이뤘고, 중국 리그 최장수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5. 그의 진심 어린 소통과 선수 존중, 전술적 유연성은 중국 팬들과 언론으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대를 초월한 축구 아이콘
서정원의 축구 인생은 단순한 기록의 나열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도전과 실패, 그리고 극복을 통해 한국 축구의 성장과 함께 걸어온 인물이다. 국가대표로서의 영광, 해외 진출의 갈등, 그리고 K리그에서의 전설적인 활약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팬들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존재로 남게 했다.
그가 남긴 기록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태도와 정신은 앞으로의 한국 축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