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은 대한민국 축구사에서 독특한 궤적을 그린 인물이다. 선수 시절에는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리며 영리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감독으로서는 국내외에서 굵직한 성과를 남기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필자는 그의 선수 시절부터 감독으로 여정을 풀어내려 한다.
원클럽맨의 전설
1969년 5월 26일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태어난 신태용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영해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에 진학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대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1992년 천안 일화 천마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1969년 5월 26일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태어난 신태용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영해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에 진학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대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1992년 천안 일화 천마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특히 1996년에는 K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진가를 발휘했고, 1995년과 2001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의 플레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상황 판단과 공간 활용 능력이 뛰어난 ‘지능형 축구’의 표본이었다. 팬들은 그를 ‘꾀돌이’ 혹은 ‘그라운드의 여우’라 불렀고, 이는 그의 영리한 경기 운영을 상징하는 별명이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A매치 23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다. 1992년 하계 올림픽 본선에도 출전하며 국제 무대에서의 경험을 쌓았다. 비록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리그에서만큼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그는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한국 축구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었다
지도자로서의 전환
2005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신태용은 호주 A리그 퀸즐랜드 로어 FC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08년, 성남 FC의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며 본격적인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9 시즌에는 성남을 리그 4위에 올려놓으며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010년에는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그의 지도력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빛을 발했다. 2010년, 성남을 이끌고 아시아 정상에 오르며 선수와 감독 모두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결승에서는 이란의 조브 아한 FC를 3-1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고, 이는 그의 지도 철학과 전술적 역량이 국제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 순간이었다. 2011년에는 FA컵 우승을 추가하며 국내 대회에서도 성과를 이어갔다. 그러나 2012년, 팀 내 마찰과 성적 부진으로 인해 성남 감독직을 내려놓게 되었고, 이는 사실상 경질로 받아들여졌다.
2014년, 신태용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발탁되며 다시 대표팀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U-23 대표팀 감독, U-20 대표팀 감독을 거쳐 2017년에는 성적 부진으로 사퇴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후임으로 A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그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이끌며 세계 무대에 섰다. 조별리그에서 스웨덴과 멕시코에 패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전 대회 우승국 독일을 2-0으로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이 승리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경기 중 하나로 남았고, 신태용은 ‘독일을 월드컵 1라운드에서 탈락시킨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도전과 갈등
2019년, 신태용은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성인 대표팀뿐만 아니라 U-20, U-23 대표팀까지 겸임하며 인도네시아 축구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2020년 AFF 스즈키컵에서는 팀을 4년 만에 결승에 올려놓으며 준우승을 차지했고, 2021년 동남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2023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쿠웨이트를 꺾고 16년 만에 본선 진출을 이끌었으며, 본선에서도 사상 첫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2024년 AFC U-23 아시안컵에서는 호주와 요르단을 꺾고 8강에 진출했으며, 8강전에서는 대한민국을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비록 올림픽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인도네시아 축구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25년 1월, 인도네시아 축구협회는 커뮤니케이션 문제와 전술적 방향성의 차이를 이유로 신태용 감독을 경질했다. 이는 재계약 반년 만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기록과 도전의 아이콘
신태용은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한국 축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K리그 최초의 60-60 클럽 가입자,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험자,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은 감독, 그리고 인도네시아 축구를 국제 무대에 올려놓은 개척자. 그의 축구 인생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도전과 갈등, 성장과 혁신의 연속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감이 되며, 앞으로도 한국 축구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태용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역사 그 자체다.